한 수도자의 사례로부터 생각해보는 그리스도적인 도움과 대화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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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도자는 젊은 시절 객실소임을 통해 손님을 환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나요. 수십년 동안 그런 소임을 할 기회도 없었고, 본인도 그런 지향을 지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어느날 수도회로부터 식당소임을 맡으라는 청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백 명 이상이 식사를 하는 피정집에서.
한 때 잠깐 소그룹의 급식을 맡아 주방 소임을 했던 적이 있지만,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소임에 대한 청을 받으면서 수도 생활 시작하면서 자신이 참으로 원했던 객실소임의 지향이 떠올랐고, 하느님이 이제 답을 주시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 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한 평생 주방소임을 하셨던 팔십 후반의 선배 수님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그 선배 수녀님으로부터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몸에 좋지 않은 신호가 왔고, 의사가 조직검사 시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간 그 수도자는 주방소임에 대한 원의를 더 확고히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결과가 악성일 경우는 전적으로 치료에 전념하리라 생각했지요. 의사는 만성이지만 악성은 아니고, 약을 복용하면서 앞으로 계속 관리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는 중, 이 수도자를 잘 알고 가까이 지내는 몇 몇 수도자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녀님, 절대 그 주방 소임 맡지마. 그러다가 큰일나면 어쩌려구...." 주방 소임을 말리는 것은 예외가 없었습니다.이렇게 걱정하는 동료 수도자들의 마음은 어떻게 그 수도자에게 닿았을까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왜? 사실 이 수도자는 자신이 수십년 전 수도자가 될 때 갖고 있던 객실 소임을 이번 주방 소임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와 지향에 답하는 것에 너무 기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뻤는가 하면, 이 새로운 소임을 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죽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하지만 혹시라도 병이 날 것이 두려워 새로운 주방 소임을 안하게 되면 그것은 후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동료 수도자들이 그 수도자의 내밀한 개인의 역사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걱정해서 말해준 것을 갖고 섭섭해하는 그 수도자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판단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 퍼실리테이터 노트에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대화에서 '겸손한 질문'의 중요성입니다. 동료 수도자들은 걱정한다는 이유로 "하지 말라고"만 했지, 누구도 그 수도자에게 "왜 그 새로운 소임이 하고 싶은지,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질문을 제시한 에드거 샤인은 <헬핑>이라는 책에서 도움이란 내가 도와주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고 한 행동이나 말이 혹시 "내가 당신을 이만큼 생각해준다고!"라는 것을 표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한 행동이나 말이 정말 그 사람이 원하는 도움의 방식이었을지를.
둘째, 위의 이야기에서 무엇이 "그리스도적인" 도움일까?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가톨릭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제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료 수도자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과 그리스도적 관심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요? 위의 사례에서 그리스도적인 관심을 갖고 그 수도자를 대했다면 어떤 다른 대화가 가능했을까요?
위의 그 수도자는 자신이 하느님의 하느님의 부르심을 선명히 느끼는 그 순간 정작 어느 누구와도 자기 내면에 일어나는 일을 나눌 수가 없어서 외로웠다고 합니다. 진실을 나누며 서로 소통하는 것만큼 그리스도적인 것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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