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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도자의 사례로부터 생각해보는 그리스도적인 도움과 대화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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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cm1892
댓글 0건 조회 321회 작성일 22-09-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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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도자는 젊은 시절 객실소임을 통해 손님을 환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나요. 수십년 동안 그런 소임을 할 기회도 없었고, 본인도 그런 지향을 지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어느날 수도회로부터 식당소임을 맡으라는 청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백 명 이상이 식사를 하는 피정집에서.

​한 때 잠깐 소그룹의 급식을 맡아 주방 소임을 했던 적이 있지만,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소임에 대한 청을 받으면서 수도 생활 시작하면서 자신이 참으로 원했던 객실소임의 지향이 떠올랐고, 하느님이 이제 답을 주시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 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한 평생 주방소임을 하셨던 팔십 후반의 선배 수님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그 선배 수녀님으로부터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몸에 좋지 않은 신호가 왔고, 의사가 조직검사 시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간 그 수도자는 주방소임에 대한 원의를 더 확고히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결과가 악성일 경우는 전적으로 치료에 전념하리라 생각했지요. 의사는 만성이지만 악성은 아니고, 약을 복용하면서 앞으로 계속 관리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는 중, 이 수도자를 잘 알고 가까이 지내는 몇 몇 수도자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녀님, 절대 그 주방 소임 맡지마. 그러다가 큰일나면 어쩌려구...." 주방 소임을 말리는 것은 예외가 없었습니다.이렇게 걱정하는 동료 수도자들의 마음은 어떻게 그 수도자에게 닿았을까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왜? 사실 이 수도자는 자신이 수십년 전 수도자가 될 때 갖고 있던 객실 소임을 이번 주방 소임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와 지향에 답하는 것에 너무 기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뻤는가 하면, 이 새로운 소임을 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죽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하지만 혹시라도 병이 날 것이 두려워 새로운 주방 소임을 안하게 되면 그것은 후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동료 수도자들이 그 수도자의 내밀한 개인의 역사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걱정해서 말해준 것을 갖고 섭섭해하는 그 수도자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판단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 퍼실리테이터 노트에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대화에서 '겸손한 질문'의 중요성입니다. 동료 수도자들은 걱정한다는 이유로 "하지 말라고"만 했지, 누구도 그 수도자에게 "왜 그 새로운 소임이 하고 싶은지,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질문을 제시한 에드거 샤인은 <헬핑>이라는 책에서 도움이란 내가 도와주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고 한 행동이나 말이 혹시 "내가 당신을 이만큼 생각해준다고!"라는 것을 표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한 행동이나 말이 정말 그 사람이 원하는 도움의 방식이었을지를.

​둘째, 위의 이야기에서 무엇이 "그리스도적인" 도움일까?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가톨릭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제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료 수도자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과 그리스도적 관심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요? 위의 사례에서 그리스도적인 관심을 갖고 그 수도자를 대했다면 어떤 다른 대화가 가능했을까요?

​위의 그 수도자는 자신이 하느님의 하느님의 부르심을 선명히 느끼는 그 순간 정작 어느 누구와도 자기 내면에 일어나는 일을 나눌 수가 없어서 외로웠다고 합니다. 진실을 나누며 서로 소통하는 것만큼 그리스도적인 것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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