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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5일 MLC회원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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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cm1892
댓글 0건 조회 87회 작성일 23-10-3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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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C회원들 지난 15일에 지도수녀님과 함께 인천 갑곷순교성지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지도수녀님의 지도하에 회원(일산 임마꿀라타,일산 에스페란사, 불고아동 프로비덴시아, 정릉 까르멘살레스 ) 총 18명이 다녀왔습니다



아주 잠깐의 순례였지만, 이 짧은 순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나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받고 왔습니다


회원들의 회원을 위하여 성경구절 캘리그라피와 그리고 간식 주머니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


성지 순례는  11시 교중미사 - 수녀회와 회원을 위한 미사 봉헌

                교중 미사 후 성지 담당 신부님의 성지 순례 이야기

                식사 

               십자가의 길

              수녀님 말씀 

              친교의 시간을 가지고 파했습니다


불광동의 새로운 회원 김수영 데레사 나영신 테클라 자매님의 참석으로 서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회원님들의 십자가의 길 처마다 기도지향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했으며, 

만남의 시간을 통해 서로인사와 함께

담당 수녀님의 훈화 및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음 해 24년 피정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파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길을 동행하실것이며 

지헤의 성령께서는 한국의 성인들께서 지켜내신 

신앙유산의 신비를 때닫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인천갑곶성시 에 대해서-

강화도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초기부터 천주교와 연관을 맺고 있다. 조선에 최초의 선교사로 입국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철종의 할머니 송씨와 며느리 신씨에게 각각 마리아로 세례를 준 것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왕족이었던 이들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그동안 자식 상계군의 역모죄로 강화도에 귀향하야 살고 있던 은언군(철종의 조부)도 강화부(관청리 형방-천죽 강화성당 부근)에서 처형되었다.


  강화도가 천주교와 또 다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39년 기해교난을 겪으면서였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천주교 신앙이 유입될 때 이용되던 육로 통행이 여의치 않게 되자, 적당한 해로를 찾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한강과 맞닿아 있는 강화도 연안 뱃길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특히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를 입국시키기 위한 해로를 개척하려고 서울 마포를 떠나 이곳 강화 갑곶 앞바다까지 왔으며, 그 후 연평도, 백령도를 거쳐 순위도 등산진에서 1846년에 체포된다. 그 뒤에도 이 강화 갑곶해안은 선교사들이 해로로 입경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통로가 되었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때는 강화도가 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대원군은 천주교 금지령을 내려 몇 개월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천주교인 수 천명을 학살하는 사건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하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는데, 이곳 강화도에서는 1868년에 진무영(현재 강화성당 부근)에서 최인서, 장치선, 박서방(박순집의 형), 조서방 등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871년에 이곳 갑곶에서 직접적인 순교사건이 일어났다. 강화도 해역에 미국함대 4척이 나타나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불탄 사건의 책임을 물어 통상을 요구했으나, 대원군이 이를 거절하게 되면서 군사적 충돌이 빚어진 것이다(신미양요).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그 결과 기록상 제물진두(현재 화수동성당 주변)에서 여섯 분이, 이곳 갑곶진두에서는 세 분이 순교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곶에서 순교하신 분은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세 분이다. 사연인 즉, 미국 군함이 물러간 이후, 같은 해 5월 29일(양력(7월 16일) 고종은 더욱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내용의 교서를 좌우 포도대장에게 내리게 되었고, 이때에 미국 군함에 몰래 찾아간 일이 있었다는 죄로 이 세 분이 효수(梟首)된 것이다.

  문헌상의 갑곶진두의 위치를 연구한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는 그 자리를 매입하여 지금의 갑곶순교성지를 조성하였고,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집중적으로 개발하였으며, 사제를 파견하여 순례자들의 신심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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